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천 유나이티드 FC/~2011년 (문단 편집) == 2007 시즌 == 장와룡 감독이 2006 시즌 종료 후 유학을 떠나면서, 2007년은 [[박이천]] 감독대행이 한 해를 맡아 이끌게 되었다. '''그리고 박이천은 그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인천을 만들었다.''' 시즌 시작 전 유망주에 그쳤던 [[이근호]]를 [[윤주일]]과 트레이드했고 당시에는 인천이 이득이라는 소리가 있었지만... 이근호는 이후 포텐이 폭발하여 국가대표가 되었고, 윤주일은 6개월만에 인천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김상록]], [[데얀 다미아노비치]]'''의 영입은 이 시즌 인천을 먹여살린 최고의 영입이 되기도 해서 인천의 이적시장은 나름 준수했다고 볼 수 있다. 김상록 - 데얀 - 방승환의 공격 라인과 이를 받쳐주는 [[박재현(축구)|박재현]], 드라간 등의 활약이 눈부셨고, 인천은 많은 실점을 냈지만 또 엄청난 득점도 기록했다. 김상록은 이 시즌 리그와 리그컵을 합쳐서 10골을 기록하였고, 데얀은 리그 14골, 리그컵 5골, FA컵 1골 등 첫 해에 20득점을 혼자 책임지는 위엄을 보여줬다. 다만 방승환은 시즌 막판 퇴장 당시 사건을 일으키는 바람에 '''무기한 출전 정지'''를 먹어 아쉽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비록 6위 안에 들지는 못했지만, 박이천 대행은 2018년까지의 모든 감독 중 '''가장 승률이 높은 감독'''으로 남아있다.[* [[이기형]]이 대행 때는 60%의 승률을 기록했으나, 이후 시즌을 합산하면 엄청 아래로 떨어진다.] 그리고 6위 안에 들지 못해 플레이오프 진출을 하지 못한 데에도 한 사건의 영향이 꽤나 컸다. 바로 '''[[임중용]]과 [[에두]]가 충돌했던 사건.''' 시즌 후반기에 인천은 우승에 도전하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만나게 됐는데, 이 경기에서 선제 실점을 허용하기는 했으나 10경기 무패 행진을 기록하던 인천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에두가 임중용에게 파울을 범하고, 임중용이 에두를 밀치고, 다시 에두와 충돌하는 상황이 일어났는데, 갑작스럽게 임중용이 퇴장당하고 에두는 경고를 받았다.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한 관중들 입장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판정에 불만을 품은 인천은 거칠어졌고, 결국 [[전재호]]가 [[이관우]]에게 거친 반칙을 범하고 퇴장당한다.[* 거기에 카메라에다가 욕설까지 하고 말았다.] 팀의 두 정신적 지주를 한 번에 잃은 인천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스코어도 3 : 0으로 벌어졌다. 그런데 그 순간, '''인천은 에두가 임중용에게 침을 뱉는 영상을 입수하여 전광판에 계속 틀어놓았다.''' 그와 함께 관중들은 분노했고, 심판은 이에 압박감을 느끼며 괴상한 판정을 반복하였다. 동시에 수원 선수들이 흔들리고 인천 선수들은 다시 경기에 집중하게 됐다. 이어서 수원도 오심에 휘둘리게 되면서 스코어는 순식간에 3 : 2까지 왔고, 수원은 야유를 받으며 공을 돌려 시간을 보내 간신히 버텼다. 경기 종료 후 팬들은 심판에게 거세게 항의하고 퇴근길을 막았으며, [[데얀 다미아노비치]]가 인터뷰에서 거센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인천, 에두, 전재호는 사후징계를 받았으나, 정작 심판은 아무 징계가 없었다. 에두를 잃은 수원도 결국 우승에 실패했고, 인천은 심판 판정에 굉장히 예민한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앞서 언급한 [[방승환]]의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에 이은 퇴장 사건까지 벌어지며 무너졌다. 전재호의 선례로 인해 방승환은 결국 '''1년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결국 중간에 풀리기는 했으나 상당 기간을 그라운드를 떠나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